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9대 대통령 선거/결론 (문단 편집) ==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안티테제]] == 19대 대선의 판도 및 결과는 묘하게도 10년 전에 벌어진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정반대로 바뀐 듯한 결과가 나왔다. 19대 대선의 가장 큰 계기가 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그 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반대 버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볼 때 기묘한 결과다. '''1. 정부의 실책들로 인한 여당 지지 기반의 붕괴, 전 선거에서의 치명적인 타격, 분당 및 재창당''' 17대: [[참여정부]] 말기에 정부와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인기를 급속도로 잃었다.[* 근데 아이러니한 건 참여정부 말기 지지율은 한국갤럽 기준 당시 역대 정권 중 최고였다. 오히려 최악은 제1차 북핵 사태와 한미FTA 문제가 있었던 집권 4년차 2006년이었다.] [[삼성 X파일 사건]], [[대연정 파동]], 우클릭 논란과 비노계인 [[정동영]]의 대선 후보 확정 등으로 [[친노]] 지지층도 대거 빠져나갔다. 특히 2006년 벌어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 수도권 기초자치단체장을 대거 내주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여파로 [[열린우리당]]에서의 탈당 및 [[중도통합민주당]]의 창당, 그리고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으로의 재창당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시기 유행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란 말도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정권의 인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19대: [[박근혜 정부]]의 지속된 실책으로 인해 지지율이 계속해서 떨어지다, 기어코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여당인 새누리당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의 야권 분열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참패, TK지역 야권후보 입성 허용, 원내 2당 추락 등의 대참패를 당한다. 여기에 더해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강성 지지층까지 떨어져 나가고, 한국갤럽 조사에서 역대 최저 정권 지지율인 '''4%'''를 기록하고 만다. 결국 박근혜 탄핵을 둘러싸고 새누리당 내의 친박과 비박 간의 대립이 극도로 심해지고, 그 결과 비박계를 중심으로 탈당 및 [[바른정당]] 창당이 이어졌으며 기존의 새누리당도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여기에 친박 의원인 [[조원진]]도 따로 나가서 구 새누리를 계승한다고 2017년 신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을 창당했다. '''2. 선거가 벌어지기 한참 전부터 이어져 온 제1야당 후보의 대세론''' 17대: 본격적인 대선 구도로 접어들기 전부터 한나라당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여론조사 선두를 달렸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를 따라잡는 형국이었다. 범여권 인사로서 [[고건]] 전 총리의 지지율이 높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지지율이 떨어져 결국 2007년에 대권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뒤엔 단 한번도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으면서 이를 대선까지 이어갔다. 19대: 문재인 전 대표가 2016년 초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 주자 지지율의 1,2위 자리를 차지했고, 안철수 전 대표가 이를 따라잡는 형국이었다. 한편, 여권에선 당시 출마가 거론되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16년 이전까지 각종 여론조사 1위를 하며 주목 받고 있었는데, [[최순실 게이트]] 이후 지지율이 떨어지다가 2017년 1월에 1위까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넘겨준 반기문 전 총장이 결국 대권 불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인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등이 지지율 상위권을 유지했다. 문재인은 본격적인 대선 기간에서도 안철수와 양자 대결을 가정한 일부 여론조사에서 근소하게 뒤진 것을 제외하면 끝까지 1위 자리를 고수했고 이는 대선 결과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3. 여권의 유력 주자의 실종''' 17대: 당시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에선 마땅한 차기 대선주자가 등장하지 못했다. 그나마 2006년까지는 고건 전 총리가 유력 후보로 등장했지만 지지율이 떨어지며 장고 끝에 2007년 불출마를 선언했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박스떼기 논란|박스떼기 논란]]까지 터지는 혼탁한 당내 경선 끝에 이해찬, 유시민 대신 [[정동영]]이 후보로 나온다. 그러나 친노계 유시민이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나라 안 망한다'''라는 폭탄발언을 하는가 하면[[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ygrha&folder=4&list_id=5630770|#]], 정동영은 당시 비노계에다 친노와 거리를 두기 위해 참여정부를 비판해 기존 친노 지지층에서 반감이 심했고, 이는 그가 당내에서 일치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19대: 제20대 총선의 참패로 인해 [[김문수]], [[오세훈]], [[김무성]] 등 잠재적인 대선 주자들이 대거 탈락해버리고, 그나마 여당에서 희망을 걸던 [[반기문]], [[황교안]]도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제대로 된 후보가 없게 되었다. 경선을 통해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후보로 확정되었지만 홍준표는 장기간 도지사 업무를 맡으면서 여의도의 중앙 정치판과는 다소 멀어졌고, 자유한국당 내 주류 계파인 친박과도 거리가 있는 인사였다. '''4. 제1야당 후보의 절대적인 1위 고수 및 다자구도, 1강 2중 2~3약 대결, 범여권, 반(反)제1야당 인사들의 단일화 시도 및 실패''' 17대: 이명박의 절대 우위 아래 정동영 및 이회창이 그 뒤를 따랐고, 그 뒤를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 및 여러 군소후보들이 쫓아가는 형태가 되었다. 정동영 및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의 범 개혁 진영 단일화 시도가 있었으나 권영길 후보와 민주노동당 세력은 민주당계와 뿌리가 다른 진보당계인데다가 나머지 셋조차 입장 차이가 뚜렷해 결국 단일화는 실패했다. 19대: 문재인의 절대 우위 아래 안철수 및 홍준표가 그 뒤를 따랐고, 그 뒤를 [[유승민]], [[심상정]] 및 군소후보들이 쫓아가는 형태가 되었다. 안철수와 홍준표, 유승민의 후보 단일화에 대한 바람을 일부 보수 언론 쪽에서 피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 세력은 민주당계에서 갈라져 나온데다가 적폐 세력(특히 자유한국당)과의 연대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반대했고, 홍준표와 유승민도 처음엔 단일화에 긍정적이었으나 후보 간의 몇 번의 감정 싸움 끝에 계파 갈등도 다시 심해지며 결국 단일화는 실패했다. '''5. 전국적인 지지 기반 확보에 성공한 당선자''' 17대: 당선자인 이명박은 광주, 전북, 전남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특히 전통적으로 역대 대선에서 민주계 후보를 지지해왔던 서울을 가져오면서 유일하게 수도권을 완전히 석권한 보수 후보가 되었다. 19대: 당선자인 문재인은 대구, 경북, 경남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특히 전통적으로 역대 대선에서 보수계 후보를 지지해왔던 부산, 울산, 강원을 가져오면서 유일하게 남부 영남과 호남에서 동시에 승리한 민주계 후보가 되었다. '''6. 서울 전지역을 석권한 당선자''' 17대: 당선자인 이명박은 서울 전 지역에서 정동영을 더블스코어로 따돌렸다. [[강남3구]]에서는 압도적으로 이겼으며, 심지어 진보 성향이 강했던 [[관악구|관악장군]], [[노원구|노]][[도봉구|도]][[강북구|강]]에서도 무려 20% 이상 앞서면서 완승했다. 19대: 당선자인 문재인은 서울 전 지역에서 홍준표를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따돌렸다. 심지어 보수 성향이 강했던 [[강남3구]], [[용산구]]에서도 10% 이상 격차를 벌리면서 여유롭게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오륜동, 한남동, 잠실4동, 잠실6동에서도 승리했다. '''7. 지지율의 상당수를 특정 지역의 표심에 의존한 2, 3위 후보들''' 17대: 각각 2, 3위를 기록한 정동영과 이회창 후보는 각각 호남과 호서에서만 간신히 존재감을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정동영은 호남에서나마 압도적인 1위라도 차지했지만, 이회창은 텃밭으로 인식하던 충남에서조차 이명박에게 근소하게 밀려 2위를 차지했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1위를 한 곳이 없었다. 19대: 각각 2, 3위를 차지한 홍준표와 안철수는 광역자치단체 중 각각 영남/관동과 호남에서만 간신히 존재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나마 홍준표는 대구, 경북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경남에서도 불과 만여 표 차이로 가까스로 이겼지만, 안철수는 텃밭으로 인식하던 호남에서조차 문재인에게 압도적으로 밀려 2위를 차지했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1위를 한 곳이 없었다. '''8. 2~30대 청년층의 지지를 받으며 화제를 일으킨 군소 정당 후보들.''' 17대: 정치 신인인 [[문국현]]이 인터넷 상에서 청년층의 지지를 받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20대에서 유의미한 득표율을 기록했다.(15.9%) 덤으로 정동영을 비토하던 일부 친노에게도 어필하였다. 19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각각 '따뜻하고 온화한 보수', '여성과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선명성 있는 진보'라는 점을 어필해서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에게 어필하였고, 각각 계층에서 유의미한 득표율을 냈다. '''9. 1위 후보와 나머지 후보의 뚜렷한 포지티브vs네거티브 활동, 그리고 역효과''' 17대: 이명박 후보는 그 유명한 [[https://www.youtube.com/watch?v=m80AudtmR2Q&feature=youtu.be|먹방 CF]]([[이명박은 배고픕니다]]) 등을 통해 자신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경제 대통령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였다. 반면 정동영 후보를 비롯한 다른 주자들은 [[BBK 주가조작 사건]]을 계속 언급하며 이명박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세의 대비되는 모습은 오히려 이명박 VS 안티 이명박이란 구도를 만들어서 이명박 대세론을 더욱 탄탄하게 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19대: 문재인 후보는 자신이 진정한 [[적폐]] 청산의 적임자임을 주장하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탄핵]]을 통해 쌓인 시민들의 불만을 해결해 주겠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친문 지지자 및 민주당이 별도로 행한 네거티브 공세가 있긴 했으나 문재인 본인의 포지티브 공세에 비하면 비중이 적은 편이었고 문재인 본인이 네거티브를 행한 사례는 더욱 적었다. 한편, 국민의당 안철수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측에선 문재인 후보에 대한 [[2007년 UN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논란|네거]][[문재인/비판과 논란/아들 고용정보원 취업 논란|티브]] 공세를 쏟아부었고, 이는 세간에 아침마다 때린다고 '[[문모닝]]'이라는 비아냥 섞인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였다.[* 그런데 이는 선거전략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뒤쫓아가는 후보 입장에선 1등 후보를 꺾기 위해 아니꼽지만 뭐라도 해야 하는 입장이고, 반대로 1등 후보 입장에선 논란을 줄이고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 게다가 이는 네거티브만 부각시키는 일부 언론의 문제도 있어 보이는데, 문모닝만 하더라도 "우리 당은 포지티브도 많이 하고 다른 당도 많이 비판했는데 언론이 문모닝만 부각시켰다."고 억울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측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안철수, 홍준표 측에서 역으로 구설수가[* 병설 유치원 논란(안), 토론셀프 네거티브 논란(안), 돼지 발정제 논란(홍), 장인 패륜 논란(홍) 등.] 터지면서 결국 지지율 격차를 줄이진 못했고 문재인 대세론은 끝까지 유지된다. 다만 차이점도 있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17대 대선의 경우 이명박 대세론이 너무 굳어 있었고 여당의 탈당쇼로 지리멸렬한 상태여서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들이 매우 많았다. 실제 17대 대선의 투표율은 고작 63%에 불과해 제6공화국 이후 치른 대선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그러나 19대 대선의 경우 박근혜 탄핵 심판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고 반드시 정권 교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이 그 어떤 때보다 뜨거웠으며 자유한국당 지지층들도 원래 투표율이 높은 노년층이 대다수에 보수 궤멸의 위기감을 느끼고 본 선거 날에 총결집 하면서 무려 77.2%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17대 대선 당시 2위 후보였던 정동영은 전국 대부분에서 대패했지만 그래도 텃밭인 호남에서 만큼은 8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보이며 텃밭을 지켰다. 그러나 19대 대선 2위인 홍준표는 텃밭인 영남에서도 부산과 울산을 문재인에게 헌납했고 경남은 초박빙 접전 끝에 겨우 이겼으며 대구, 경북에서도 과반 득표에 실패해 텃밭도 온전히 사수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17대 대선과 다르게 19대 대선은 원래 보수의 앞마당이었다가 경합지로 변한 곳이 상당히 많았고[*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동부, 강원도, 비영호남권 농촌 지역 등], 이에 따라 많은 국민들이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결과(특히 강원, PK)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비슷한 부분으로 세대별 투표의 경우, 17대 당시 2~30대 청년층의 투표 성향이 많이 갈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2위인 정동영은 모든 세대에서 20~30% 정도의 비교적 고른 지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19대 대선 2위인 홍준표는 노년층인 60대 이상은 거의 50%에 가깝게 나오는 반면 20대 지지율은 두자리 수인 10%에도 못미치는 8% 정도의 지지율이 나오는 등 세대별 격차가 심했다. || 선거 ||<-2> [[18대 대선]][br]방송3사 출구조사[* 실제 선거 결과는 박근혜 후보가 경기, 인천, 대전에서 출구조사와 달리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 ||<-2> [[19대 대선]][br]홍-안 양자구도 || || 지역 || [[박근혜]] || [[문재인]] || [[홍준표]] || [[안철수]] || || [[서울특별시]] || 47.5% || {{{#ffffff '''52.2%'''}}} || 47.6% || {{{#ffffff '''52.1%'''}}} || || [[인천광역시]] || 49.0% || {{{#ffffff '''50.6%'''}}} || 46.4% || {{{#ffffff '''53.3%'''}}} || || [[경기도]] || 48.8% || {{{#ffffff '''50.9%'''}}} || 47.4% || {{{#ffffff '''52.3%'''}}} || || [[강원도]] || {{{#ffffff '''61.3%'''}}} || 38.4% || {{{#ffffff '''57.8%'''}}} || 41.9% || || [[대전광역시]] || 49.5% || {{{#ffffff '''50.0%'''}}} || 46.5% || {{{#ffffff '''53.2%'''}}} || || [[충청남도]][* [[세종특별자치시]] 포함] || {{{#ffffff '''54.0%'''}}} || 45.8% || {{{#ffffff '''50.5%'''}}} || 49.3% || || [[충청북도]] || {{{#ffffff '''56.6%'''}}} || 43.2% || {{{#ffffff '''54.6%'''}}} || 45.2% || || [[부산광역시]] || {{{#ffffff '''60.3%'''}}} || 39.5% || {{{#ffffff '''65.4%'''}}} || 34.4% || || [[울산광역시]] || {{{#ffffff '''59.9%'''}}} || 39.9% || {{{#ffffff '''61.2%'''}}} || 38.6% || || [[대구광역시]] || {{{#ffffff '''79.9%'''}}} || 19.9% || {{{#ffffff '''74.9%'''}}} || 24.7% || || [[경상남도]] || {{{#ffffff '''62.9%'''}}} || 36.8% || {{{#ffffff '''73.4%'''}}} || 26.4% || || [[경상북도]] || {{{#ffffff '''82.1%'''}}} || 17.7% || {{{#ffffff '''76.3%'''}}} || 23.4% || || [[광주광역시]] || 6.1% || {{{#ffffff '''93.8%'''}}} || 4.9% || {{{#ffffff '''95.0%'''}}} || || [[전라남도]] || 7.7% || {{{#ffffff '''92.1%'''}}} || 7.4% || {{{#ffffff '''92.5%'''}}} || || [[전라북도]] || 11.2% || {{{#ffffff '''88.5%'''}}} || 12.3% || {{{#ffffff '''87.5%'''}}} || || [[제주특별자치도]] || {{{#ffffff '''51.8%'''}}} || 47.9% || 46.5% || {{{#ffffff '''53.2%'''}}} || || 전국 || {{{#ffffff '''50.1%'''}}} || 48.9% || {{{#ffffff '''52.7%'''}}} || 47.0% || 이외에도, 19대 대선의 [[홍준표]] vs [[안철수]] 결과는 마치 [[18대 대선]]의 축소버전이라고 할 정도로 흡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